1890년 중국 선교사였던 존 네비우스가 선교지 분할정책을 입안하여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우후죽순 입국하여 중복 선교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 정책에 따라 미국은 평안남북도를 포함한 서부지역을 담당하였고 캐나다는 상대적으로 오지가 많고 험준한 지역인 함경남북도 지역을 선교지로 삼게 되었다. 성진에 그리어슨, 함흥에 맥래, 원산에 푸트가 각각 선교부를 설립했고 이들은 회령과 북간도(북만주) 일대의 용정지역, 연해주 지역까지 선교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평양에서 윌리엄 홀이, 황해도 소래에서 맥켄지가 순교했고, 소래에서 셔우드 홀이 사역을 했다. 소래는 비전펠로우십 설립자 최선수 장로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 비전펠로우십과 한우리교회(구 서머나교회)가 탁아소를 세운 곳이 나진 선봉지구의 굴포리이다.

모든 선교의 출발점은 무디(D. L. Moodie) 목사의 부흥운동이다. 게일, 하디, 에비슨 등이 모두 무디의 부흥운동과 학생자원운동에 은혜를 받고 선교사로 자원하게 되었다. 시카고 부흥운동이 한국의 원산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의 전기가 된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다.

유품전시실에는 셔우드와 메리안의 딸 필리스가 중정한 희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찬송가는 로제타가 아들 셔우드에게 선물한 것이고, 대한결핵협회 초청 때 받았던 각종 훈장, 감사장, 감사패, 기념메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셔우드의 아내 메리안에게 기증 받은 ‘조선회상’ 초판본과 아버지 윌리엄이 파송될 때 뉴욕의 한 교회에서 증정한 성경책은 아들 셔우드에게 물려진 130년된 것과 셔우드가 들고 다니던 왕진가방 등이 있다.
